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고창읍성 외벽에 숨겨진 각자의 비밀을 찾아보세요.

백강 문정사랑 2016. 3. 30. 10:21

고창읍성! 한국의 3대 읍성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오늘은 고창읍성의 숨겨진 역사 보물을 찾아볼까요?

고창읍성 입구에서 표를 구하고 바로 읍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요.

매표소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동리국악당이 있어요.

동리국악당 옆의 비가 보이지요.

누구의 비일까? 한번쯤 자녀들과 함께 자세히 찾아보세요.

 

 

이 기념비는 동리 신재효선생의 추모하는 비입니다.

고창읍성 앞의 판소리박물관은 들려도 요것은 안보고 지나치더라구요.

이 추념비 뒤에도 비석이 있어요.

 

 

이 비는 동리신재효 선생의 아버지에 비인데, 화강암이라 마모가 심하여 글씨 판독이 쉽지는 않아요.

동리선생의 아버지는 신광흡으로 서울에서 고창의 경주인을 하다가 낙향하여 고창의 관약방을 하여 많은 돈을 벌어

고창고을에 기부금을 많이 내신 분이지요. 

 

 

 

ㅋㅋㅋ

보는 이의 눈이 삐틀어져 그런가 사진이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졌어요.

이 비는 동리신재효선생의 유애비랍니다.

동리선생은 판소리를 정리하여 한국 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시기도 하였지만

당시 어려운 백성들에게 구휼도 열심히 하신 분이지요.

동리 선생의 흔적을 조금이나만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

 

이 비 바로 옆에는 명창 만정 김소희여사의 흔적도 볼 수 있어요.

김소희여사는 서울의 국악고등학교를 설립하시기도 하였지요.

만정은 고창 흥덕 태생이랍니다.

 

이제 성벽 아래 있는 비석군으로 가봐요.

 

 

이 비들은 뭘까요? 하나하나 보는 것도 아이들 교육에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곳에는 고창 현감의 비들은 물론이고,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의 비도 있어요.

이 비들 중에는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군부대신 이근택의 형 비도 있어요.

물론 이 사람도 남작인가? 하여간 일본의 귀족칭호를 얻었지요.

찾아 보세요. 아마 우리 고창사람들이 이 자가 미워서 비를 일부 깼는지도 모르겠네요.

 

관찰사 이근호불망비예요? 불망비??? 잊지말자! 뭘 잊지말자는 거지?

그래 나라팔어 먹은 자는 영원세세토록 이렇게 기억한다고.....

이 자들의 후손들이 국립 공주대 총장과 교수회장도 했다나?????

 

 

이근호 불망비 옆에는 조선후기 풍수의 대가이셨던 이서구 관찰사의 불망비도 있네요.

조금 관심을 가지고 고창읍성의 비를 보세요.

그럼 이제부터 고창읍성의 외벽으로 돌아볼까요? 음 여기에서 어느쪽으로 갈까요?

전 공북루 쪽인 왼쪽으로 가서 돌려고 해요.

 

요것은 고창읍성의 답성놀이를 하는 여인들의 상입니다.

답성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죠!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죽어서 극락승천한다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고창읍성을 돈다고 하네요.

 

킹킹 대고 올라와보면 옛 고창읍성의 토성 흔적을 볼 수 있어요.

성은 쌓다가 맞을 까요? 음! 책들을 보면 성들은 쌓았다고만 해요.

요것 보세요! 쌓은 것이 아니라 깎았잖아요. 이건 삭토한 흔적인데 말이예요.

 

음! 태인시라는 한자가 세겨인 돌이 성벽 바로 옆에 있네요!

무슨 의미일까? 태인시작이라는 뜻인데....

맞아요! 태인현 백성들이 이 성을 여기서부터 쌓았다는 뜻이겠네요. 그럼 끝나는 지점도 있겠지요.

 

성벽 밖으로 돌다가 성 아래를 보면, 이렇게 땅이 파인 것들이 보입니다.

이것이 해자는 거예요. 고창읍성은 성벽 하나로 된 홑성이라서 외부 방어를 위해 이렇게 해자는 파서 일차로 적을 막아내는 거예요. 

 

 

제주도에서 사람들이 왔네요.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도 전라도 땅이었으니 그랬겠죠.

 

함평사람들이 쌓기 시작했다는 함평시면이 있네요. 

 

 

이곳이 고창읍성의 동문인 등양류랍니다. 오를등에 햇볕양자이지요.

 

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돌이 있는데, 비로 이것이랍니다.

이 돌에 새겨진 글자로 해서 고창읍성의 축성연대를 밝힐 수가 있었지요.

한 번 읽어볼까요. 계유소축감동송지민.

음! 게유년에 축성하였는데 감독관이 송지민이라는 사람이래요.

송지민? 자료를 아무리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안 나오네요.

 

 

동쪽 문인 등양류 입구로 이곳도 옹성이지요. 항아리 옹을 써서 옹성이라 해요.

배가 뽈록 나온 사람을 항아리 몸매라고 하는데, 꼭 그런 몸매...

 

담양시면이네요.

 

 

고창현민들이 쌓은 곳....

고창은 바로 이곳이니 쌓은 거리로 넓어져요. 멀리서 온 사람들은 성을 조금 쌓고요.

 

 

한쪽은 김제시작이고, 한 쪽은 용담 끝이네요.

 

우리의 이웃 동네 정읍사람이 시작은 곳의 비네요.

 

위의 비들 앞의 성벽을 자세히 보세요.

기분 좋으면 이렇게 성벽의 글씨도 찾을 수 있어요.

사진으로 알 수 없네요. 

 

정읍끝과 장성 시작 지점이예요.

 

사실 앞의 비와 벽에 새겨진 글과는 많이 달라요. 아마 복원하는 과정이나 성벽이 무너지면서 그 원형을 잃어서 그런가봐요.

 

 

 

 

 

 

 

고부군민들의 끝나는 지점이네요. 고부군??? 그럼요. 백제시대부터 고부는 전라도의 중심도시였어요.

백제의 중방 고사부리성이였지요.

지금은 초라한 면으로 떨어졌지만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정읍과는 비교 불가

후에 고창 정읍 부안이 통합된다면 전 개인적으로 고부시가 좋다고 생각해요.

성벽에 고부종면이라는 각자가 보이지요.

성벽의 글씨와 비의 글씨가 일치하는 곳이네요. 용안종명.

 

 

 

성벽 아레 뭔가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지요. 사진이라 그래요.

실제로 찾아보면 확인이 가능하지요.

 

구멍 뚫린 이 돌은 뭘까요? 아마 당간지주인듯해요. 두 개가 위 아래로 나란히 묻혀 있네요.

아래 잘 다듬어진 돌은 묘의 기대석이나 뭐 건축물의 돌들이 아닐까요?

고려시대 이 일대는 고창오씨들의 땅이 많았데요. 아마 고창오씨들의 묘에서 가져 온 듯해요.

고창오씨는 시조가 오학린이라는 분이지요. 고창을 사패지지로 받아 내려오셨지요.

사패지지요? 음 쉽게 말하면 임금님이 공로가 많은 신하들에게 특별히 주는 땅이지요.

무장의 시작지점이네요. 무장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온 것이 1417년인가? 태종 17년인 것 같아요.

무장현은 본래 무송() ·장사() 두 현()의 합친 명칭이예요.

아! 그럼 고창읍성이 1417년 이후에 쌓인 것이 맞겠네요.

영화 인디아나존스처럼 고고학은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예요. 

 

 

고창읍성의 남쪽이예요. 고창읍성은 성문이 세 개 밖에 없어요. 남문이 없어요. 왜냐구요?

사실 고창읍성의 산줄기는 남에서 북으로 뻗어요. 그러니 남문을 만들수 없지요. 풍수지리적으로 그렇고....

 

 

성벽에 3패 강우라는 각자가 새겨 있네요. 음!!!

패가 뭘까요? 고민입니다. 도와주세요?

 

사패와 오패의 면이구요. 아마 특수한 집단같은 건가봐요.

 

성벽에 능성이라는 한자가 보이네요. 능성이라???

능성은 1415년(태종 15) 철야현ㆍ도민부곡ㆍ운곡소가 남평현에 이속되고, 이듬해 화순현이 병합되어 순성()으로 개칭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1418년 화순이 분리되면서 다시 능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창읍성의 축성연대는 1418년 이후라는 거네요.

 

영광사람들이 성벽에 글씨를 아주 멋지게 새겨 놓았네요.

 

성벽에 이렇게 비석처럼 보이는 거나 건축물들이나 묘지들의 돌들을 빼서 쌓았네요.

하긴 고창읍성 주위로 돌들을 주워오기가 넘 힘들어요. 왜냐구요?

황토라 돌이 안보이거든요.

고창읍성 쌓은다고 고생들 너무 하셨지요.

 

성벽 안에 주추돌도 보이네요.

 

 

고창의 흥덕이 끝나는 흥덕 종면비가 있어요.

흥덕과 무장, 그리고 고창은 1914년 이전에는 다른 군이었어요.

흥덕군 무장군 고창군 이렇게 불렀는데요.

1914년 일제에 의해 고창군으로 통합되었어요. 

서쪽으로 내려가는 성벽이예요.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네요

 

임실시면이네요. 참 멀리서들 오셨지요.

 

 

서쪽문인 진서루예요. 서쪽을 진압한다는 뜻이구요. 고창읍성의 서쪽은 능선이 없어서 평지에 쌓았어요.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모형을 원형으로 하려다 보니 서쪽 능선이 너무 안쪽이라 원형이 안낭와요.

그래서 이렇게 서쪽의 평지에 성문을 만들었네요.

 

고창읍성의 외곽은 처음이지요.

고창읍성은 계절별로, 장소별로 도는 곳에 따라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지요.

아이들에게 역사나 뭔가 옛 선인들의 삶의 흔적, 고생, 삶과 죽음 등

이런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외곽으로 돌아보세요.

고창읍성의 또 다른 묘미예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너무 힘들게 축성한 힘 없는 백성들의 아픔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