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 주위의 명소들
흥덕은 고창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였어요.
백제시대 상칠현이라 불린 고을로, 상칠은 백제식 이두향찰어예요.
본래는 우칠이, 오칠이라 불리던 고을로 이곳에서 옻을 많이 생산하였나봐요.
아직도 그 마을 이름인 오태동이 남아 있거든요.
이제 고대로의 산책을 해봐요.
요번에는 특별히 고창북고 역사반 아이들이 함께 발걸음을 해주었어요.
오태동은 흥덕산업단지 바로 넘어에 있는 마을이예요.
흥덕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그곳에서 백제식 굴방무덤인 횡혈식석실분이 6기나 발굴되었어요.
이 마을이 오태동인데, 백제의 현치소였어요.
마을 걷다보면 이렇게 백제토기편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물론 다양한 토기들과 지기들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오늘의 중심은 백제의 상칠현,
상칠현은 통일신라시대는 상질현으로 불려요,
이 이름은 고려 의종때까지 불릴거예요.
그후 발음이 안좋다고 장덕현으로 바뀌지요.
근데 고려시대는 임금의 이름을 지몀이나 이름으로 쓸 수 없었어요.
고려의 장이 임금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충선왕이예요.
그래서 다시 흥덕은 창덕현으로 바뀌지요.
그후 창왕이 임금으로 등극하자 창적이 흥덕으로 바뀌지요.
그래서 오늘날의 흥덕현이라는 이름이 고려말에 생기게 된답니다.
더운 여름 아이들이 저를 따라 열심히 옵니다.
더운데도 불구하고 투덜거림도 없이 오는 아이들 입니다.
요런 녀석들을 데려다가 공부나 일을 시키면 잘하겠네요.
백제의 토기편들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어요.
오태동의 우물은 그 역사를 말해주지요.
이런 청자편들도 발굴되고요.
정말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흥덕향교예요.
이곳에는 중국과 한국의 유대한 선현들을 모시는 모시는 곳이지요.
물론 글을 가르쳐거나 흥덕지방의 미풍을 바로 잡는데 앞장섯겠지요.
흥덕향교 앞에는 흥덕 당간지주가 있어요.
원래 이곳에는 갈곡사라는 고려시대의 절이 있었데요.
절을 쫓아 내고 그곳에 흥덕향교가 들어선 거죠.
당간지주의 축면에 이런 멋진 문양이 새겨져 있어요.
향교 앞의 하마비입니다.
즉 말에서 내려주세요, 걸어주세요,
뭐 이런 뜻이 담겨 있겠네요.
흥덕향교 앞에는 이런 비석들이 있는데요,
흥덕현의 현감들 비들이 대부분이구요,
전라감사 이호준의 영세불망비도 있네요.
이호준이 누구냐구요.
바로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의 양아버지예요.
정말로 흔한 백제토기편들이네요.
우물도 깊구요.
이곳은 흥덕제예요.
동진강 하류지역의 간척을 위해 만든 일제시대의 저수지이지요.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총독이 쓴 글이랍니다.
이것은 대정6년에 기공식을 하고 대정 7년에 준공하였어요.
그러니 역사적으로 보면 1917년에 기공식하고 1918년에 준공했다는 말이네요.
그는 데라우치 이후 조선총독부 제2대 총독으로 한국에 오지요.
흥덕제라는 큰 글씨 옆에 작은 글씨로 호도라고 쓰여있지요.
요시미치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1군 소속으로 전공을 세워 육군 대장에 오른 일본인이예요.
조선의 군대해산시 조선군을 공격한 인물이지요.
요놈은 조선을 무단통치하였고, 민족운동 탄압으로 악명 높았어요.
1904년 10월 조선주둔군사령관, 1906년에는 임시 통감대리를 겸임했지요.
1914년 원수(元帥)로 승진한 다음 조선총독으로 왔어요.
이 자는 이후 조선임야조사령, 식산은행령, 지세령 따위를 공포해 식민지 지배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특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무력으로 대응해 그 책임으로 중도낙마합니다.
바로 그런 인간이지요. 나쁜 놈
흥덕제 아래의 넓은 고부들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