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선사인들의 삶과 절기
백강 문정사랑
2022. 3. 9. 10:14
고대인들의 때는 어떤 의미일까?
바쁘게 분초로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때는?
인간의 삶이 100년이라는 것을 생각 해본다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쪼개고 또 쪼개는
시간의 속박과 마음의 억느름으로 살까?
청동기시대의 시간은 크게 동지, 춘분, 하지, 추분,
그리고 다시 동지가 하나의 주기였다.
난방도 잘 안되었을 기나긴 겨울의 시간과 추분이
지나 찿아올 그 추위와 배고픔의 시간들.
그렇기에 선사인들의 동짓날은 다시금 삶의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춘분이 되면 서서히 대지에 싹이 꿈틀거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한다.
하지가 되면 논에 뿌려진 발아된 볍씨가 활착이
잘되도록 하늘에 온 맘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농사는 하짓날 강우에 따라 한 해를 결정짓기 때문에
기상의 중요성의 간절함은 뭘로도 표현불가다.
그리고 밤이 되면 밤하늘에서 유난히도 밝아 선한
이미지 자체인 별에 간절히 빌고 빈다. 오직 풍년.
가을의 추분은 첫수확한 소중한 곡식을 태양신에게
제일 먼저 올리고 깊고 긴 음기가 서서히 다가옴을
알고, 곡식을 수확하고 땔감을 부지런히 준비한다.
선사인들의 이런 삶의 모습은 고인돌에 고스란히
남겨 두었음에도 지금의 눈으로 보니 난 못읽었다.
선사인들의 한 농사의 간절함은 하짓날 비,
초저녁과 자정 전후의 별들의 모습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고, 하늘에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그 해 농사의 풍흉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대인들의 삶 자체였다.
1960년대까지 내려온 보릿고개가 선사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아니 그 보다 더 처절했음은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이들은 태양의 주기 중심의 일년이 이미
수천년 전에 확립되었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한 해의 길흉화복과 기상여건, 특히 농사의 풍흉의
예측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이를 모두 담아낸 흔적이 바로 고인돌이었다.
고인돌을 처음 조사할 때는 이를 축조한 사람에 대한
경외감이었다면, 조금씩 이들의 삶이 눈에 들어
오면서는 자연에 어쩌지 못하는 순응하면서도
처절하게 살고자하는 의지와 힘겨움이 보인다.
조사하면 할 수록 내 눈가엔 눈물이 글썽여진다.
저 산야에 널브러진 거대한 돌의 의미를!
202202200958
바쁘게 분초로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때는?
인간의 삶이 100년이라는 것을 생각 해본다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쪼개고 또 쪼개는
시간의 속박과 마음의 억느름으로 살까?
청동기시대의 시간은 크게 동지, 춘분, 하지, 추분,
그리고 다시 동지가 하나의 주기였다.
난방도 잘 안되었을 기나긴 겨울의 시간과 추분이
지나 찿아올 그 추위와 배고픔의 시간들.
그렇기에 선사인들의 동짓날은 다시금 삶의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춘분이 되면 서서히 대지에 싹이 꿈틀거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한다.
하지가 되면 논에 뿌려진 발아된 볍씨가 활착이
잘되도록 하늘에 온 맘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농사는 하짓날 강우에 따라 한 해를 결정짓기 때문에
기상의 중요성의 간절함은 뭘로도 표현불가다.
그리고 밤이 되면 밤하늘에서 유난히도 밝아 선한
이미지 자체인 별에 간절히 빌고 빈다. 오직 풍년.
가을의 추분은 첫수확한 소중한 곡식을 태양신에게
제일 먼저 올리고 깊고 긴 음기가 서서히 다가옴을
알고, 곡식을 수확하고 땔감을 부지런히 준비한다.
선사인들의 이런 삶의 모습은 고인돌에 고스란히
남겨 두었음에도 지금의 눈으로 보니 난 못읽었다.
선사인들의 한 농사의 간절함은 하짓날 비,
초저녁과 자정 전후의 별들의 모습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고, 하늘에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그 해 농사의 풍흉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대인들의 삶 자체였다.
1960년대까지 내려온 보릿고개가 선사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아니 그 보다 더 처절했음은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이들은 태양의 주기 중심의 일년이 이미
수천년 전에 확립되었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한 해의 길흉화복과 기상여건, 특히 농사의 풍흉의
예측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이를 모두 담아낸 흔적이 바로 고인돌이었다.
고인돌을 처음 조사할 때는 이를 축조한 사람에 대한
경외감이었다면, 조금씩 이들의 삶이 눈에 들어
오면서는 자연에 어쩌지 못하는 순응하면서도
처절하게 살고자하는 의지와 힘겨움이 보인다.
조사하면 할 수록 내 눈가엔 눈물이 글썽여진다.
저 산야에 널브러진 거대한 돌의 의미를!
20220220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