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부곡리 증산은 중기구석기 문화유적
고속도로 14호선 남고창I·C 건설구간 내『고창 부곡리 증산유적』이라는 작은 보고서 의하면, 고창 부곡리 증산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구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유구와 출토유물을 통해 발굴조사 성과는 다음과 같다.
1. 유적이 위치한 북쪽사면은 고수천에 면해 있으며 분지상의 지형을 이루고 있어 고창군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지형이다. 그리고 주변에 석영암계의 석재가 풍부하게 확인된다.
2. 유적에서 검출된 석기제작소의 존재가 여러 층에 걸쳐 확인되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여러 시기에 걸쳐 석기 제작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관련된 많은 격지 편들과 망치, 그리고 제작된 도구가 발견된 점은 이 지역에서 인류의 행위가 빈번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출토된 석기들은 주먹도끼나 양날찍게, 긁개와 흠날석기 등이 있는데, 이는 호남지역의 구석기시대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4.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분묘는 분구묘, 옹관묘, 석관묘 등 다양하게 조사되었다. 이는 고수천 주변의 분묘를 살펴볼 때, 하류의 만동·예지·봉덕·남산에 비해 시기적으로 앞서고 규모는 작다. 반면에 상류에는 본 유적과 함께 단면육각형의 석실분이 확인되는 부곡리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어 지역적 또는 시기적으로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5. 분묘가 조성된 맞은편에는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26기가 조사된 부곡리유적이 위치하고 있어 주거지와 분묘군이 공간분할이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6. 건물지에서는 기단석열과 건물지 1동, 집수정 등이 조사되었고, 건물지의 서쪽에는 동서방향의 석열이 획인되는데 건물지보다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부곡리지석묘군 이전부지의 출토유물과 비교해볼 때, 건물지는 남북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중기까지의 것으로 추정하였다.
당시 전라일보는 조선대 이기길교수 인터뷰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에는 “중기 구석기 유구가 확인된 것은 호남지역에서 처음”이며 “호남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한 “중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출토유물인 원초형 주먹도끼가 출토된 것은 매우 의미가 높은 것”이며 “예리한 날의 깎개가 늘고 홈날칼과 톱니날칼을 만들었던 석기제작소가 확인된 것은 호남고고학계의 경사”라고 정리하고 있다. 증산유적은 시기적으로 BC 5만 년전에서 BC 12만년까지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