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강전쟁(白村江の戦い)

부안지방의 지명을 통해 본 백강위치 비정

백강 문정사랑 2009. 9. 2. 16:46

 부안지방의 지명을 통해 본 백강

부안군이 역사의 기록에서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인데, 여기에서 邊山(변산)을 卞山(변산)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안은 옛날에는 두 고을로 나누어 있었는데, 한 고을은 줄포․진서․보안 등을 중심으로 백제시대에는 흔량매현(欣良買縣), 통일신라시대에는 희안(喜安), 고려시대에는 보안(保安)이라 하고 별호로 낭주(浪州)라 불렀다. 白村江(백촌강)의 白村, 白沙는 백제의 欣良買(흔양매)를 뜻하는 글자로 적은 것이다. 흔량매현은 흰내말이라는 뜻으로 하얀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어의 신, 내, 뫼(hsin, ne, me)는 흰, 내,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진강의 옛이름 息璋浦(식장포)도 그 別辭이다. 즉 欣, 息자는 白의 뜻과 소리를 빌려 적은 것이다.

  또 한 고을은 부안읍․행안․상서․하서․주산의 일부를 백제시대에는 개화현(皆火縣), 통일신라시대에는 부령(扶寧-부여국을 평정하였다) 또는 계발(戒發-伎伐浦)이라고 하여 고려시대까지 불렸다. 고려시대 이명으로 제안(濟安-백제를 점령하여 평안케 되었다)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 지역을 관할하던 고부를 平倭縣으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동진반도는 백제시대에 皆火(개화: 戒發)로 불리웠다. 개화는 伎伐(기발, 只火-지화)과 대응할 수 있는 지명이다. 동진반도에 있는 구지리토성(九芝里土城)이 백제시대의 개화현청사로 추정이 된다. 구지리는 舊芝火(구지화)의 와전된 글자로써 界火島(계화도)의 계화도 그 흔적이다.  

三國志 魏志東夷傳에 支半國(지반국), 狗素國(구소국), 捷盧國(첩로국), 牟盧卑離國(모노비리국)이 열거되어 있다. 支半(伎伐=부안), 狗素(古沙=고부), 牟盧卑離(牟良夫里=고창)를 잇는 삼각형 안에 있는 곳이 바로 捷盧지방이다. 이 첩로국의 첨로는 한음 tsie-liu로 바로 州流(tsou-lie) 周留(tsou-lie)를 달리 적은 지명이다. 따라서 豆良伊․豆率․․州柔도 같은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고을을 조선시대 초 태종16년(1416)에 합쳐 부령의 扶와 보안의 安을 따와 扶安으로 하였다. 이후 부안의 객사가 세워지고 이를 부풍관(扶風館)이라 하니 부안을 별칭으로 부풍이라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