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어원이 되는 제방이자 저수지였다.
이후 백제시대 중방인 고사부리의 속현 흔량매현의
속지였으며, 남북국시대 보안현 속지이자 제안포라
불린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12조창의 하나인 안흥창의 주변이자
고려청자의 주산지 인근으로 고려 경제의 중추였다.
서해안 칠산어장의 법성포와 함께 전북의 군산보다
앞서 개항이 될 정도로 호남의 중심항이었다.
물론 1788년 인근 흥덕의 사진포도 안흥창과 함께
마포로 향하는 중요한 관선과 상선의 요충지로
줄포도 그에 못지 않은 항구였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정도 일제는 전북 서남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줄포와 오사카를 직항하는
항로를 개설하기도 했고, 그 혜택은 고스란히
줄포의 김성수일가에게 돌아갔다.
줄포자동차공고는 옛 수당국민학교 자리에 설립된
공립학교로, 이 학교는 삼양사의 김연수가 설립했기
때문에 그의 호를 따서 수당국민학교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줄포리에만 인구가 1만명을 넘었고
하니 지금 고창읍이나 부안읍이 2만명인 것을
생각하면 100년전 줄포항의 위세가 짐작된다.
옛 삼양사 도정공장과 포구가 있던 곳의 바위에
김경중이라는 한자가 보이는데, 그는 김성수와
김연수의 생부이다.
도정공장이 철거되고 주변이 정리되자 100년 전
삼양사 창립의 주역인 그의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바위에 새긴 글씨는 줄포자동차공고 옆 넓은
주차장에 있으니 김성수 일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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