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역사와 인물, 그리고 이야기가 살아 있는 반암마을

백강 문정사랑 2016. 10. 25. 12:55

 반암마을 인근에는 아산초등학교라는 작은 학교가 있습니다.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지역주민들이 어렵게 살린 학교이지요.

이 학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고창의 인천강(주진천)역사와 함께하는 곳이지요.

학교 뒤에는 조선중후기 대유학자 변성진 변성온 형제가 공부한 초당이 있습니다. 

KBS의 항공사진으로 본 고창 아산초등학교의 봄 모습입니다.

 

 

오늘 코스는 초등학교 바로 옆의 구암마을을 거쳐 호암과 반암으로 가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의 첫 관문의 길가인 구암마을에는 이렇게 당산이 세워져 있습니다.

구암마을의 좌청룡에 세워진 당산입니다. 한때는 마을을 굳건히 지키는 수호신이었는데

요즘은 수호신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이 당산은 구암에서 선운사로 가는 풍천터널 못가서 길가에 있습니다.

앞에는 병바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인고의 세월을 느끼는 듯합니다.

우리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어요.

 

구암마을의 당산을 지나 선운사 방면으로 가다보면  반곡마을 입구의 정자가 보입니다.

그 정자 바로 앞에 큰 고인돌이 있는데 농사용 도구들이 잔득 올려져 있지요.

고창에는 워낙 많은 고인돌들이 있다보니 고인돌의 역사적 가치나 의미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나 지역주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만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곡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고인돌군이 있어요.

영모정의 호암을 바라보고 있지요,

이곳에는 바득판식도 개석식도 혼재된 곳이랍니다.

 

 

반곡마을 입구의 마을 당산이예요.

이곳 반암리 일대는 고창의 전통적인 문화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지요.

그냥 걷다보면 보이는 것이 문화재이니까요?

역시나 농자재가 잔득 쌓여 있네요.

 

반곡을 지나 인천강의 다리를 건너면 호암마을이예요.

마을 입구에 이렇게 큰 당산이 있고,

당산나무 아래에는 천제단으로 추정되는 큰 고인돌이 있어요.

 

 

 

호암마을 당산나무와 모정 아래에 있는 고인돌입니다.

 

조금 기울어지진 했어도 방향이 태앙이 뜨고 지는 각도를 바라보고 있지요.

 

 

 

오래된 당산으로 수술을 받았네요.

수백년 간 이곳을 지킨 마을의 호신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지요.

 

반암마을이예요.

이곳은 김성수와 백남운이라는 걸출한 인물들과 관련이 깊어요.

아래 묘는 백남운 선생의 아버지 묘소입니다.

김성수 선생ㅇ야 말할 것이 없구요.

백남운 선생은 연희전문의 교수로 조선경제사를 쓰신 분으로 유명하죠.

한국전쟁 전 북으로 월북하여 북한의 초대 교육부장관을 맡았던 인물이죠.

역사의 평가가 극을 달리기는 하지만 하여간 인물이긴 하죠.

 

이 건물은 백남운 선생이 태어난 바로 옆의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였다죠,

생가터는 바로 옆인데, 이곳을 보통 생가라고들 합니다.

역시 월북해서 그런지 관리상태가 영 아니네요.

 

백남운 생가 바로 인근에 김성수선생의 할머니 영일 정씨 묘가 있어요.

삼양사, 고려대, 동아일보, 경성방직으로 대별되는 한때는 한국 최대의 재벌이었죠.

이 묘는 선운사 중턱에 있는 김요협? 선생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반암마을 입구에 있는 금암사라는 사우예요.

 

이 사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경기전 참봉 오희길 선생을 모시고 있는 사당입니다.

오희길 선생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자 전주사고의 책들과 어전, 그리고 제기들을 모두 내장산으로 옮겨 안전하게 보호하여

지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시키게 되죠.

바로 오희길 선생이 바로 조선왕죌록을 지킨 실질적인 경기전의 대장이셨죠.

이 분을 돕기 위해 정읍의 손홍록과 안의라는 선비가 도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