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조선후기 봉건사회 모순에 대한 저항과 외세의 침탈행위에 대항하여 보국안민과 척양척왜 등을 주장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일어난 농민항쟁이다.
이러한 동학농민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의 위치에 대한 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로 모아지는 것 같다.
구수마을에서 일어나게 된 배경은 1894년 1월 고부민란이 이후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에서 농민군 가담자를 가혹하게 다루자 전봉준은 일단의 무리들을 해산하여 3월 13일 부하 50여 명만을 거느리고 무장으로 내려간다.
당시 호남의 최대세력을 떨치던 손화중 등과 힘을 합하여 세상을 바로잡고 일본인을 물리친다는 것을 요체로 1894년 3월 20일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에서 포고문을 발포하고 행동지침을 포괄하는 4대 명의를 발표하였다.
전봉준 등 지도부가 밝힌 거사의 대의명분은 이때 발표된 <무장창의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마을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큰 팽나무인 당산나무가 있어 당산마을이라 불렸고,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구수마을보다는 당산마을이라는 이름을 줄겨부르고 있다.
무장기포는 지역봉기인 민란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봉기로 출발한 시발점으로써 동학농민혁명사에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무장포고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김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군신과 부자는 가장 큰 인륜으로 꼽는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충직하며 아비가 자애롭고 아들이 효도를 한 뒤에야 국가를 이루어 끝없는 복록을 불러오게 된다. 이하 생략
1894년 3월 20일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거리당산 톺아보기③~하거리당산의 입지와 기능 (0) | 2011.03.01 |
---|---|
전봉준장군 생가(東学党農民の乱・全琫準将軍の生家) (0) | 2010.08.16 |
아산계산리 고인돌 (0) | 2010.07.17 |
コインドルを見て (0) | 2010.05.17 |
고창해리하련리고인돌 (0) | 2010.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