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생각이 담긴
것이 고인돌이고, 고인돌의 배치는 그들의 표현이다.
무장 교흥리에 두 개의 고인돌군이 400~500m쯤
떨어져 있고, 한 곳은 산 중턱에 다른 한 곳은 위의
고인돌의 산줄기가 내려온 구릉에 있다.
어떤 이는 고명하신 학자의 이야기만 듣고 무덤라고
다른 어떤 의심도 없이 믿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장 교흥리의 두 고인돌군이 보여주는 것은 선사인들이 삶과
것이 고인돌이고, 고인돌의 배치는 그들의 표현이다.
무장 교흥리에 두 개의 고인돌군이 400~500m쯤
떨어져 있고, 한 곳은 산 중턱에 다른 한 곳은 위의
고인돌의 산줄기가 내려온 구릉에 있다.
어떤 이는 고명하신 학자의 이야기만 듣고 무덤라고
다른 어떤 의심도 없이 믿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장 교흥리의 두 고인돌군이 보여주는 것은 선사인들이 삶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여 고인돌
각각의 기능과 활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이지만 산 중턱의 20여기의 고인돌은 분명
무덤이 맞고, 그 아래 밭의 4기 고인돌은 제단이다.
밭의 정상에 있는 고인돌들은 제단의 패턴이 보이는
방향성으로 절기나 별자리 관찰의 배치다.
앞으로 자세히 논하겠지만 아래는 하짓날과 동짓날
일출과 160°로 고인돌을 배치한 특징이다.
위의 산 중턱의 기반식 고인돌이 진북을 배후로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북극성이 있는
별로 되돌아 간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이 두 고인돌군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겨우 길도 없는 곳을 찾아 기록할 수 있었다.
특히 산중턱의 고인돌군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202202201854
각각의 기능과 활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이지만 산 중턱의 20여기의 고인돌은 분명
무덤이 맞고, 그 아래 밭의 4기 고인돌은 제단이다.
밭의 정상에 있는 고인돌들은 제단의 패턴이 보이는
방향성으로 절기나 별자리 관찰의 배치다.
앞으로 자세히 논하겠지만 아래는 하짓날과 동짓날
일출과 160°로 고인돌을 배치한 특징이다.
위의 산 중턱의 기반식 고인돌이 진북을 배후로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북극성이 있는
별로 되돌아 간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이 두 고인돌군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겨우 길도 없는 곳을 찾아 기록할 수 있었다.
특히 산중턱의 고인돌군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20220220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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