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강전쟁(白村江の戦い)

주류성과 장패평전투

백강 문정사랑 2009. 9. 21. 12:25


장패평(將敗坪) 전투: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장전

장패평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장밭들을 말합니다. 한자로는 장전리(長田里) 또는 장전리(長戰里)라고 쓰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 지역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패평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將敗坪이라고 쓰는데, 역사의 기록은 승리자의 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당시 28명의 장군을 파견하여 대대적으로 부흥백제국을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거센 저항으로 많은 장수들이 죽었으나, 결국 신라는 백제를 항복시키고 역사의 승리자가 됩니다. 그래서 전쟁에 승리를 했지만 수  많은 장수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장군들이 패한 곳이라는 뜻으로 남게 된 것이라 전해져 내려옵니다. 

 

 

(살막실에서 상서면소재지를 바라 본 전경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패평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상서면 감교리의 들판입니다.)

  

당시에는 이 장패들이 늪지대와 산록완사면의 평원이었습니다. 현재 감교리 신흥과 봉은 및 사산저수지(조손샘) 일대를 입니다. 상서들판이라고도 하는 이 지역은 농경지로 탈바꿈을 하였으나, 일제 때 동진 하장리 수문과 하서 대교 수문이 없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부천 부근과 두포천의 인근 상서들판은 갯벌지역이었습니다.

풍왕은 백강구에서 패전을 하자 바로 도망을 갔으나, 제왜군은 끝까지 항전을 결의하고 잔여세력은 주류성을 바로 앞 장패평을 중심으로 집결을 합니다. 이에 문무왕이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28명의 장군과 5만의 신라군을 출병시킵니다. 또한  웅진도독 유인궤도 당군을 이끌고 출병을 하고, 한편으로는 당 본국에 지원병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당은 손인사를 우위장군으로 삼아 병력을 파병합니다. 신라 문무왕과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육군과 당의 유인궤는 주류성을 포위를 합니다. 그리고 손인사가 이끄는 당수군 170척은 663년 8월 17일 부안진성에 진을 치고 있다가 왜 수군과 백강에서 전투를 벌여 왜 수군을 격파합니다. 왜 수군을 격파한 당군은 다시 주변의 산성들을 점령하면서 제왜연합군을 주류성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주류성의 위급함을 들은 백제장군 흑치상지는 예산 임존성에서 와 전투를 지휘합니다. 신라군은 장패평 들판 건너 사산산성 부근과 유정재(신라군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뜻의 유진(留陣)에서 생긴 이름)에 집결을 합니다. 

 

(유정재라 부르는 곳으로 현재는 23번 국도가 통과하는 곳입니다. 유정재와 관련된 내용은 따로 기록을 하겠습니다. 유정재에서 상서를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신라군은 이미 평정된 백제의 남쪽에서 식량을 보급 받고, 탐라국에서 병마를 징발하였습니다. 제왜연합군은 마지막 총격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당군이 주류성을 감싸 인근에 진을 치고 도착하자 제왜군은 총공세를 펼쳤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수일간에 걸쳐 싸우게 되었습니다. 장패평에서의 처절한 전투로 제왜군은 물론이고 나당군도 수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질퍽한 습지와 논경지인 좁은 장패평에서 몇날며칠간의 처절한 싸움으로 인해 두포천는 피로 얼룩졌습니다. 전세는 점점 제왜연합군에 불리하게 되었고, 더 이상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백제장군 흑치상지와 부여충승은 항복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이도학교수님이 설명한 주류성을 중심으로 한 나당군과 제왜연합군의 군사배치도입니다. 이렇게 공영방송에서 조차 백강을 부안이라 하고 나오는데 주류성이나 백강이 홍성이나 당진, 금강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은 왜 검증을 하자는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내용도 좀 더 깊이 짚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현재 이 지도에서 사라진 두포천의 존재가 백강전투의 핵이 되는데 두포천은 전혀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위의 주류성 부근의 하천과 지형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장패평에서 승리를 거둔 나당군은 9월 7일 주류성에 입성하여 흑치상지와 풍왕의 동생 부여충승으로부터 항복을 받게 됩니다. 이 전투로 패배로 백제의 마지막 왕성인 주류성은 함락되고 말았으며, 결국 부흥백제국 마저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수신이 이끄는 임존성도 항복한 백제장군 흑치상지에 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4년간의 처절했던 백제부흥의 깃발도 꺾여 망국의 한을 가지고 수십만의 백제유민들이 배를 타고 현해탄을 넘어가 일본열도에서 새로운 역사를 펼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효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