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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
▣방송 : 2009. 6. 8 (월) 23:30~24:15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최필곤 PD
지난 4월 15일, 한 일본인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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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DNA가 같은 존재” 오우치 부부의 특별한 한국 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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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왕릉에 제문을 올리는 오우치 기미오, 오우치 다카코 부부 |
한국을 방문한 오우치(大內) 부부는 성묘를 위해 부여 능산리 2호분(백제 성왕의 능으로 추정)에 무릎을 꿇었다. |
“아득히 먼 아버지 백제왕의 묘 앞에 머리를 대고 왕의 혈손 45대 후손 오우치 기미오 삼가 아룁니다. 수많은 세대를 거쳐 그리고 수많은 세월을 지나 드디어 대망의 조상의 땅에 지금 돌아왔습니다.” - 부여 성왕릉 참배 당시, 제문 중에서 - |
스스로 한국인과 DNA가 같다고 말하는 오우치 부부. 그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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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원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던 중 눈물을 흘리는 오우치 기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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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을 갈아치운 일본 최고의 권력 가문, 오우치” 오우치 가문과 조선 왕실의 관계는? |
오우치 가문의 한국 방문은 700년 전에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통교기사만 150년간 에 걸쳐 200회가 넘을 정도로 활발하게 조선과 교역했던 오우치 가문. 그들은 특별히 사신을 통해 요청한 것이 있었는데... |
“나는 백제의 후손입니다. 일본 나라 사람들이 나의 세계(世系)와 나의 성씨(姓氏)를 알지 못하니, 갖추어 써서 주시기를 청합니다.” 정종실록 1년 7월 10일 중에서 |
14세기 당시 일본을 재패했던 일본 최고의 가문 오우치 일가는 왜 자신들을 백제의 후손이라 주장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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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야마구치시(市)에 남아있는 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의 동상과 루리코사(琉璃光寺) 5층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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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백제 왕자의 기록” 일본에 남아 있는 임성태자의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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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류사에 남아있는 임성태자가 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진 도검 |
오우치 가문에 의하면 임성태자는 성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그의 기록이 없다. 그는 과연 실존했던 인물일까? 일본 곳곳에는 임성태자의 유물과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1400년 전 임성태자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일본 고대 국가 건설의 비밀을 만나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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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우치 가문의 족보와 족보 제일 앞장의 임성태자(琳聖太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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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태자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 597년, 백제에 무슨 일이 있었나? |
일본 기록에 의하면 임성태자가 백제를 떠난 시점은 597년. 그는 왜 백제를 떠나야만 했을까? 임성태자가 떠난 후 2년간 혜왕, 법왕, 무왕 3명의 왕이 바뀔 정도로 혼란했던 백제. 건국 이래 가장 치열한 정치적 파장이 예고됐던 상황에서 임성태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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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남아있는 임성태자 공양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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