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고창 오거리당산을 걷다

백강 문정사랑 2016. 5. 26. 18:28

고창의 명물은 고창읍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창에 오면 읍성이나 선운산, 청보리밭, 고인돌 등만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창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그것은 고창의 오거리당산이다.

오거리 당산은 고창읍의 동서남북과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오래전부터 남겨진 생활문화유산이다.

특히 조각이 잘 된 조형석의 당산은 할아버지 당산들로 1790년 호남지방이 대홍수로 자연석이 휩쓸려가자

고창의 아전들이 1803년에 만든 당산이다.

고창의 오거리당산은 풍수적으로 허한 고창읍의 비보경관으로 고창읍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고창의 오거리는 동쪽의 상거리를 시작으로 중앙의 중리, 서쪽의 하거리, 남쪽의 중거리, 북쪽의 교촌리 당산의 다섯 곳을 말한다.

각 당산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의 가족 당산으로 이루어졌다. 

   

 

이 당산은 고창의 서쪽인 하거리 당산이다.

신체가 조형석으로 약 7m나 되는 거대한 당산으로 할아버지 당산이다.

 

 

갓은 네모로 오거리당산 중 중리의 할아버지 당산을 제외하고 모두 네모 모자를 쓰고 있다.

 

 

 

하거리의 할머니당산이다. 이 비에는 고창읍내수구입석비라는 글이 새겨 있다.

학생들이 발로 차 부러져 이렇게 허리를 수술했다.

수구는 풍수로 좌청룡과 우백호가 만나는 곳이다.

그러니 이곳이 고창천이 빠져나가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아들 당산 바로 아래 있는 돌로 기자석이라 부른다.

아이들 낳지 못한

옛날 여성들이 새벽에 이것에 음식과 제물을 올려 놓고 정성을 드리던 곳이다.

 

이 당산이 아들당산으로 신체는 팽나무이다. 이곳에 가옥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가지를 잘라 이렇게 깊은 상처가 있다. 

 

 

 

하거리의 할아버지 당산 밑부부이다.

거대한 조형석의 할아버지 당산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해진다.

 

 

당산의 측면에는 진서화표라하여 서쪽을 진압하는 화표라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당은 높이 645cm의 화강암석간으로서 상단에 삿갓 모양의 개석이 씌워져 있어,

속칭 갓당산’, ‘삿갓비석으로도 불린다.

할아버지당의 서쪽 면에는 鎭西莘表 嘉慶八年 癸亥三月 日이라고 횡서로 음각되어 있다. 

화표는 기둥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곧 서쪽을 누르는 기둥을 18033월에 세우다의 의미가 된다.

이어 할머니당은 높이 158cm(넓이 60cm, 17cm)의 비석으로 할아버지당의 서쪽 켠에 서 있다.

 高敞邑內水口立石碑라고 음각되어 있다.

 

이곳 하거리 당산은 숲정이가 있어 당산을 보호하였고,

 동학농민혁명군을 이곳에서 학살한 곳이기도 하다.

 하거리 당산은 현재 며느리 당산만 없다.

이곳이 예전에 고창 하거리당산의 숲정이가 있었던 곳이다.

 

 

 

이제부터는 중거리 당산이다.

 중거리는 고창의 남쪽 당산으로 현재 

할아버지와 할머니 당산만 남아 있다.

 

길거리에 초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중거리의 할아버지 당산이다.

 아마 이곳도 몇십센티미터는 묻혔을 것이다.

 

 

이곳의 당산 갓은 네모이고, 곧은 일자로 되어 있으며, 방위는 동서남북이 정확하다.

당산에는 각자가 새겨 있다.

높이 367cm에 달하는 할아버지당은 화강암 석간(石竿)이며 서쪽면에

 喜慶八年 癸亥三月 日, 千年頑骨 屹然鎭南이라 세로로 각자(横書)되어있다.

 가경 8년 계해년은 1803(순조2)이다.

그리고 새겨진 글은 천년동안 굳센 골격으로 우뚝 서서 남쪽을 누르다.”의 뜻이다.

곧 남쪽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중거리의 할머니 당산이 보인다.

당산은 자연석으로 당산 뒤에는 별자리로 추정되는 홈이 파여 있다.

 

 

 

 

고창의 중앙인 중리당산 할아버지 당산이다.

이 당산에는 당시 시주와 화주 밑 글쓴이, 세운 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산에 옷을 입혔다. 당산제를 지내고 동부리와 서부리가 서로 줄다리를 하는데,

여자팀인 서부리가 매해 이기는 풍습이다.

그래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산의 삿갓은 동그라미인데. 이는 이곳이 가운데 당산이기 때문이다.

이 당산이 중리당산의 할아버지 당산이다.

 

 

 

 

 

 

이 팽나무가 중리당산의 할머니 당산이다. 도로가 너무 붙어 위태위태하다.

 

 

가운데 새끼줄로 옷을 입혀다.

올해도 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할머니당산님!

 

 

상거리 당산은 아름다운 고창천변을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

고창천변을 따라 쭉가면 나온다.

  

 

 

 

 

고창의 동쪽인 상거리 당산의 아들당산이다.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네요.

 

 

상거리의 할아버지 당산으로 입석입니다. 뒤의 느티나무는 후대에 심어 놓은 것이다.

할아버지 당산도 그리 오래 된 것같지는 않다.

이 당산도 방장산을 바라보고 있다.

월산천의 수구막이자 천북동의 수호신으로 월산천이 공격하는 것을 막아준다.

 

나무가 며느리당산이고, 비가 할머니 당산이다.

 

직접 보면 굉장히 큰 팽나무이다.

둘레가 거의 4m 정도 될까?

아래는 과거 당숲거리 또는 숲정이가 있었던 곳이다.

 

 

 

아래는 교촌리 당산이다.

일명 북촌당산이라 부른다.

본래 향교 앞에 세워져 있던 비석 형태의 당산이었는데, 어느 때 파괴되자,

동쪽으로 옮겨 현재의 위치에 새로 세운 것이다.

이 당산은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북촌당산으로 불러야 옳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 당산에는 남쪽 면에 북쪽을 누르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鎭北華表,

서쪽 면에 一九八四年 十月 日, 高敞五巨里堂山保存季員會立이라 횡서로 음각 되었다. 

다른 당산과 달리 남쪽 면에 새긴 것은, 북쪽을 바라보며 재를 올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진북화표라는 명문이 뚜렷이 남아 있다.

 

원래는 고창향교의 비석군에 있었는데, 트럭이 받아 현재 고창초 급식실 뒤로 옮겼다.

근데 아쉽다.

전혀 풍수적 개념과는 달리 세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