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네 개의 큰 섬과 작은 사천여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시코쿠는 네 번째의 크기로 그곳에는 네 개의 현이 있다.
日本は大きな島4つと小さな島4千あまりで成り立っている。
四国は大きな4つの島の中で一番小さい。
その四国の中には4つの県がある。
지금까지 시코쿠를 열 번 이상을 다녀왔다.
순전히 처갓집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매년 방문을 하다 보니 올해로 벌써 13번째 방문 인듯하다.
그렇게 자주 방문을 하였어도 왜 그렇게도 야시마성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시코쿠 가가와현는 처갓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今まで四国には10回以上行った。
妻の実家があるから毎年顔を見せに行く。
今年でもう13回目の訪問だと思う。
そんなに行ってるのに何故今まで屋島に行けなかったのか分からない。
香川県は妻の実家からそう遠いわけじゃない。
시코쿠를 가는 길은 인천이나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부산에서 배를 오사카로 가는 길이 있다.
10여 년 전에는 광주에서 다카마츠로 가는 비행기도 있어서 타고 간 기억이 난다.
四国に行くには仁川からまっすぐ飛行機で飛んだり
大阪に行ってからバスに乗り換えて行く方法がある。
10年以上前に光州から四国高松に行く飛行機があって乗ったこともある。
올해는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를 갔다. 가족들이 총 다섯 명이라 작은 이층의 침대가 있는 객실을 잡고 18시간의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하였다.
今年は初めて家族と一緒に船に乗って大阪に向かった。
我が家は五人家族だ。
小さい二段ベット二つがある客室が与えられて18時間船に揺られた。
처음으로 배를 타고 시코쿠와 혼슈 사이에 있는 넓은 세토나이카해협을 지나는 것으로도 일본여행의 맛을 충분히 본 듯하다.
하여간 2주간 난 일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을 하였다.
아쉬운 것은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지고 가지 않아 수고스럽게 아내가 운전을 전부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난 이번만큼은 반드시 야시마성을 가고 싶었다
初めて船で四国と本州の境にある広い瀬戸内海を渡り
日本旅行!って感じを充分に味わった。
それで二週間日本で何しようかなあと計画を練った。
残念なのは今回も国際運転免許証を持ってこなかったことだ。
日本での運転はまた全部うちの奥さんの仕事になってしまった。
今回は絶対に屋島に行きたいと思っていた。
일본에 도착한 후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기로 하였다.
日本に到着したあと屋島行きの日を決めた。
奥さんと子供たちも一緒にいくことになった。
그날밤 아내는 인터넷을 찾아 야시마성의 위치를 확인하고 야시마성에 푹 빠진 한 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는 야시마성의 성문을 발견하고 이를 학계에 알린 인물이었다.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야시마성에 대한 집념과 사랑으로 일천여년을 땅에 묻혀있었던 성문을 찾는 것이었다.
屋島行きの前日の晩、うちの奥さんはインターネットで屋島の位置を検索する際に
屋島にハマッてしまった人を見つけた。
彼は屋島城の城門を発見しこれを学会に知らしめた人物だった。
誰も関心を示さない屋島城に愛と信念をもって
日夜屋島を駆け巡っている人がいるという情報を見つけたのだった。
그는 屋嶋城跡硏究所長인 平岡岩夫라는 사람이다.
그는 엔진니어로 수십년을 일하다가 야시마의 자연환경에 다카마츠에 정착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야시마가 고대산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알리고
연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십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매일 안내와 유적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彼は屋島城跡研究所長の平岡岩夫さんという方だ。
エンジニアとして数十年を過ごした後
屋島の自然環境にハマり、高松に定着なさった。
そして屋島が古代山城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これを世間に知らしめ
研究しなければという一念で、
10年以上案内と遺跡保護という取り組みをなさってる方だ。
한국이나 일본의 학계는 박사가 없거나 교수가 아니면
그 사람이 아무리 큰일을 하였어도 일을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낮은 것 같다.
韓国でも日本でもその人が博士や教授じゃなければ
どんなに大きなことをしたって
個人に対する学会の評価は総じて低いようだ。
야시마성의 성문은 고대 일본의 조선식(백제식) 산성의 성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을 보면, 성문의 폭이 5.4m, 성문의 길이(성 안쪽으로 깊이)는 10m에 이르는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일본 국내에서 확인된 고대산성의 성문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확인이 되었다. 이를 발견한 인물이 바로 위의 平岡岩夫 소장이지만 이분이 현재까지 학위도 전공자도 아니라서 그도 일본의 학계에서 철저히 배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平岡岩夫씨를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아내의 노력으로 연락을 여러 곳을 취해 겨우 통화가 되고 그가 우리를 안내해주기 한 것이다.
屋島城の城門は古代日本の朝鮮式(百済式)山城の城門の中で、最も規模が大きいという。
今まで調査されたものを見ると、城門の幅が5.4m、城門の長さ(城の内側での長さ)が10mにもなると言われている。
これは現在日本で確認された古代山城の中で
最大であると確認されている。
これを発見したのがまさにこの平岡岩夫所長だ。この方は学位もなく
専門家でもない。日本の学界からのなんとなく感じる疎外感をぬぐえないとおっしゃる。
平岡さんに出会えたのは自分にとってはすごい幸運だった。
うちの奥さんが努力してあっちにこっちに電話してみて、
ようやく電話が通じて、こうなったんだけど。
야시마성은 663년 8월 백강(현 두포천과 동진강 일대)전투가 끝나고 백제가 멸망을 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제유민들이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성이다.
당시 야마토 조정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해 일본열도를 방어를 방어책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야마토 조정은 대마도와 규슈부터 세토나이카연안에 대대적인 산성을 축성하게 된다. 야시마성은 667년에 지금의 가가와현 다카마츠시 야시마(香川縣 高松市 屋嶋)에 축성을 하였다.
야시마은 말 그대로 원래는 屋嶋에 쌓은 성이다.
야시마성에 대한 기사는 일본서기 天智 6년(667년) 11월의 기록에 나라의 高安城, 대마도의 金田城과 함께 축성된 것으로 나온다.
屋島城は663年8月、白村江の戦いが終結し、百済が滅亡し多くの百済移民たちが船に乗って
対馬を越えてやってきて造り始めた城だ。
当時のヤマト朝廷には、新羅・唐の連合軍の攻撃に対する日本列島の防御が最優先の課題だった。
ゆえにヤマト朝廷は対馬と九州から瀬戸内海沿岸に大々的に山城を築城するようになった。
屋島城は667年に現在の香川県高松市屋島に造られた。
屋島城に関する記事は日本書紀天智6年(667年)11月の記録にある。
奈良の高安城、対馬の金田城と共に、
築城されたと出ている。
야시마의 서안으로 약10km지점에도 고대산성이 발견이 되었다고 平岡岩夫씨는 말한다. 아마 그 산성도 당시에 축성된 고대 조선식산성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야시마성은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단애가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또한 산정상부에서는 세토나이카 해안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며,
전면의 바다에는 여러 개의 섬들이 있어 작전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바다 건너로는 백제인들의 근거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오카야마현 길비군이 있는 지역이다.
길비군에는 니만향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에서 백강전쟁 당시 이만명의 대군을 파병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야시마성은 바로 길비지역과 서로 군사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屋島の西方約10キロくらいの地点にも古代山城が発見されたと平岡さんがおっしゃった。
おそらくその山城も当時に造られた古代朝鮮式のようだという。
屋島城は山の頂上部の平坦な地形を中心に
周辺には断崖のある浅海の要塞だった。
また山頂は瀬戸内海を一望できる防御に有利な地域であり、
前面の海には幾つもの島があり、作戦に充分に活用できる位置にあった。
海を超えれば百済人達の根城ともいえる岡山県吉備郡がある。
吉備郡には二万町という地名がある。
ここは白村江の戦い当時二万人の大軍を派兵したということでついた地名だ。
屋島城はまさにその吉備地域とお互いに軍事的に協力出来る地域だと言える。
야시마성은 정상부가 평탄한데 이는 야시마가 화강암 대지를 기반으로 그 위 중간부에서 정상까지 응회암, 그 위를 암산암으로 덮어져 있다. 안산암은 강도가 주위의 암석에 비해 단단하기 때문에 침식으로부터 남아질 수 있었다.
屋島城は頂上部が平坦で、これは屋島が花崗岩を基盤としており、
その上の中間部では凝灰岩、その上は安山岩に覆われている。
安山岩の強度は周囲の岩石に比べて強いため、花崗岩が侵食されても残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だ。
이러한 연유로 야시마의 정상부는 평탄한 지형이다.
야시마의 표고는 최고점이 293m, 산 정상은 280m 전후로 거의 평탄면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이곳이 주차장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こういう理由で屋島の頂上部は平坦な地形である。
屋島の標高は最高点が293m、山の頂上は280m前後でほぼ平坦な面をなしている。
現在はここが駐車場として機能している。
산 정상의 주변은 90도 각도의 절애를 보임으로써 천연의 성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일부 구간은 돌이나 흙으로 쌓아 성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야시마성은 부여의 부소산성과 같이 성 내에도 여러 겹의 방어 석축이나 토축한 것으로 보인다.
야시마성의 서쪽 표고 100m지점에 돌로 축성된 석루가 있으며, 이 석루는 계곡의 입구를 막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石壘가 주변지역으로 연속상으로 나타나지 않아 성의 외곽선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그 이유는 석루가 너무 짧아 그것을 산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던 것 갔다.
山の頂上の周辺では90度の角度の絶崖は目に入る。天然の城壁になっている。
一部の区間だけ石や土などを積み上げて城を作ったようだ。
屋島城は韓国プヨの扶蘇山城と同じように城内部にも何重かの防御用の石築遺構や土築遺構があるようだ。
屋島城の西側、標高100m地点に石で作られた石壘がある。
これは警告の入り口をふさぐ役割を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
しかしその石壘が周辺に連続性を見せていないため、
城の外郭線を見つけるのに非常に苦労したようだ。
それは石壘があまりにも短く、山城とみるにはあまりにも証拠が貧弱だったためだ。
다행히도 정상부를 둘레에 석축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이곳이 고대산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平岡岩夫씨가 2002년 3월에 성문을 발견함으로써
야시마가 고대산성이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良かったことに、頂上部分を囲んでいた石築の痕跡があちこちに残っていて、
これが古代山城であるという事実が明らかになったそうだ。
また、上記のとおり、平岡岩夫さんが2002年3月に城門を発見したことにより
屋島が古代山城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されたという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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