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동네까지 조사할 생각은 없었는데, 고인돌의
방향성의 의미를 연구하는 과정에 자꾸만 시야가
강화 마니산 참성대까지 넓어져 버렸다.
일부 고인돌과 참성대는 제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분명 방향에 일정한 규칙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참성대의 논문을 읽던 중 일제강점기의 실측도를
보게되어 참성대 배치의 방향를 분석하였다.
본래 제단은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은 원으로, 땅은
네모로 상징화 했고, 이는 일본의 전방후원분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되었다.
여하튼 일제강점기의 실측도 방위가 얼마나 정확하게 그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실측도를 바탕으로 강화 참성단이 향하고 있는 방위는 동남향인 128°로 측정되었다.
즉 참성단의 제단 상위는 네모이고 계단이 제단과
일치시킨 128°의 방위로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본 여러 편의 참성단 논문 중 이 방향성이
가지는 의미의 해석을 아직까지는 읽은 적이 없다.
참성단의 계단과 제단은 대충 방위를 측정한
값이 128°로, 이방위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참성단의 축조 시기나 배경 등은 제외하더라도 각종
기록에 단군과 제사라는 두 가지 사실은 존재한다.
그런데 하필 왜 동남향으로 제단을 축조했을까?
지리학이나 건축학 조경학 등의 학문에서 구조물의
방향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성단의 동남향으로 약 61km거리에 해발 581m의
수원 광교산과 일직선으로 일치하고 있다.
12월 25일 전후 동짓날 광교산에서 떠오르는 태양,
고조선이건 고려이건 당시 지배자들은 국가 안위를
위해 그들은 해를 보고 제사를 드린 것은 아닐까?
동짓날은 고려시대에 새해로 불리기도 했고, 임금께
하례를 하고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이후부터 어둠의 악귀가 물러
나고, 밝음의 기운이 세상으로 확대되면 추위로부터
해방되어 백성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시기였다.
강화 마니산 참성단은 동남향에서 동트는 동짓날
천신과 지신께 태양을 보며 제를 올린 제단이었다.
아래 두 번째는 동짓날 일출일몰 지점이고, 네번째
그림은 하짓날의 일춘일몰 지점을 그린 선이다.
동짓날과 제단의 방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는 고창의 벽송리 고인돌 덮개돌
방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선사인들과 고조선인 또는
고려인의 동짓날이 가지는 의미가 동일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창 중월리 고인돌과 동짓날 해돋이 (0) | 2022.03.04 |
---|---|
고창 벽송리 고인돌 동짓날 해돋이 (0) | 2022.03.04 |
고인돌에 천문학과 관련이 없다? (0) | 2022.03.04 |
고창 벽송리 고인돌과 동짓날 (0) | 2022.03.04 |
고창 고인돌과 천문학 KBS 방영되다 (0) | 2022.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