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207

고창 해리 평장고인돌과 북두칠성

어 이상하다! 분명 하나가 더 있어야 하는데! 마을모정에 세 분의 어르신들이 화투치고 계신다. 혹시 이곳 도로에 큰 바위돌이 있지 않았어요? 없었다고 한 분이 말씀하시자 옆에 계신 분이, 아녀! 옛날에 여기에 크고 이쁜 큰 바위가 있었어. 그럼 어디로 갔데요? 음 도로를 넓히고 포장하면서 없애버렸지. 근데 아저씬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알았소? 네 바위돌들이 여섯개로 대강 위치를 보니, 옛날엔 북두칠성으로 놓은 것같아요. 해리 하련의 평지마을에는 현재 여섯개의 고인돌이 집과 집 사이의 담장으로, 장독대 등 다양하게 이용되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불편한 존재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선사인들의 삶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별들에 대한 애정을 볼 수있어 기쁘다. 좀더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고인돌..

고창 죽림 호암마을 고인돌과 고인돌 관계

고창 죽림리 호암마을에는 몇기의 고인돌이 있다. 그 고인돌은 제각각 의미가 부여되었고, 고인돌들은 서로 간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다. 호암마을회관 옆의 고인돌의 장축은 60°로 서해안 고속도로 고인돌휴게소 방면으로 하지일출이다. 이 고인돌에서 다시 마을 광장이 있는 위로 올라 가면 응회암의 큰 바위돌 또는 고인돌이 있다. 이 바위돌의 북동쪽으로 범바위가 있는데 그 위로 북극성을 볼 수 있고, 마을회관 옆의 고인돌과는 동짓날 일출지점인 120°를 향하고 있다. 주민들이 쉽게 접근이 편한 곳엔 하짓날의 고인돌이 있고, 마을 조금 높은 곳의 평지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공동체의 놀이 공간에 고인돌이 있다. 위의 고인돌에서 범바위를 바라보는 쪽어 북극성을 배치한 것도 이곳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센스인..

운곡리고인돌과 북극성, 북극오성?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전혀 보이지 않던 고인돌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 선들이 향하고 있는 곳을 보라! 모두 운곡리의 거대한 고인돌로 향하고 있는 것을! 고인돌이나 고인돌군들을 연결한 선이 직선은 아닐지라도 운곡리고인돌에 닿는 것을 말이다. 도산리고인돌과 죽림리1코스 및 운곡리고인돌, 송암 앞과 회관 옆과 송암고인돌 및 운곡리고인돌, 160°로 일렬로 배치된 송암과 호암 사이의 고인돌들과 운곡리고인돌, 죽림리고인돌 제3코스 끝의 8개의 진북방향배치는 약 6° 운곡리고인돌을 벗어났지만 비슷하다. 이것은 청동기시대 선사인들이 운곡리고인돌을 중심으로 고인돌들을 배치했다는 의미이다. 선사인들은 고인돌 축조할 때 고인돌 상호 간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운곡리고인돌은 어..

고인돌의 바위구멍과 별자리

고인돌 덮개돌에 보이는 바위구멍의 연구는 해석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천수백의 밝은 별 중 어떤 것을 보고 새겼는지! 바위구멍들은 고인돌의 장축 두 곳의 끝부분에 있고, 뾰족한 부분은 340°방향이며, 끝모서리를 따라 11개가 확인되었다. 이 반대인 160°방향의 끝부분은 평평하고, 이곳에는 9개의 바위구멍이 위로부터 세로로 2개, 십자가형으로 5개, 가로로 2개가 순서대로 새겨있다. 우선 160° 방향의 바위구멍 중 가운데 다섯 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오제좌 자리인듯 하다. 오제좌는 서양의 사자자리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테네볼라 별로 약간 밝은 별이다. 2등성의 가운데 별은 황제자리이고, 나머지 네 별은 동방의 청제, 남방의 적제, 서방의 백제, 북방의 흑제가 앉는 자리이다. 아래의 두 성혈..

대산 지석리고인돌 별자리를 담다

대산 지석마을 뒤에 있는 고인돌 중 가장 크고 바둑판식고인돌이 분명한 허리가 부러진 고인돌. 주위는 아카시아나무와 찔레나무로 우거져 있다. 조사를 하려면 먼저 고인돌 주변의 잡목들 제거. 그리고 자른 잡목들 중 가는 것을 모아 임시로 빗자루를 만들고 고인돌을 정성껏 청소해준다. 그러면 고인돌 덮개돌에 숨겨진 비밀인 바위구멍인 성혈이 나올 때가 이렇게 종종있다. 성내 산림과 고수 우평, 강촌 등 160°와 240°로 향하는 고인돌들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다. 즉 이 방위각은 별자리 관측과 관련이 깊고, 특히 초저녁과 새벽에 금성의 관찰이 가능한 방위다. 그러니 조금 신경써서 고인돌을 만든 부족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성혈을 새겨 놓는다. 근데 요것도 잘모르겠다. 언젠가 풀어야할 숙제. 지석리고인돌은 고인돌 ..

공음 군유고인돌이 갖는 천문학적 의미

얼마나 너희들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난 달 분명 예전 길가에 봤던 인상 깊었던 너희들이 그리워 찾았는데 못찾았어. 오늘은 반드시 찾아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밝히고 싶었고 무엇보다 보고 싶었어. 오늘도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찾았지. 역시나 그 때 보고 느꼈던 친근함이 여전했어. 멀리서 보니 오늘 날씨가 좋아 더욱 멋지구나. 다만 어떤 이가 뭔가로 쓰려고 흠집을 내 것이 마음이 아프긴 해도 이 정도에 만족하자구나. 역시 이곳도 패턴 그대로 고인돌의 장축을 배치했어. 흠집이 있는 고인돌은 동서방향으로 놓았고, 바로 옆은 120°로 배치했어. 맞지?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장축이 어딘지 모르겠어. 근데 대충보니 뾰족한 부분이 북쪽으로 향하는 듯한데 오를 수 없어 못봤지. 근데 넌 너무 커서 항공..

무장읍성 고인돌이 의미하는 절기

무장읍성의 북서쪽에 두기의 고인돌이 있죠. 오랜만에 가보니 밀림 속에서 찾는 느낌이랄까? 이곳은 사유지라 함부로 제초작업도 쉽지 않죠. 그래도 30여분 부지런히 풀들과 칡넝쿨을 제거하고 위를 쓸어주면 요렇게 단아한 고인돌이 나옵니다. 예전에 한 기만 봤을 때는 방향 판단이 어려웠죠. 그치만 이렇게 두 기가 있으면 손쉽게 확인이 가능. 한두기가 있는 것은 대부분 제단일 확률이 높다보니 일정한 패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두 기의 고인돌 장축도 60°와 그 반대인 300°를 향하고 있어 싱겁게 조사가 끝나고 이동하죠. 다만 요즘은 이상한 곳을 찾아 이동하다보니 잡풀과 의 싸움으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아참! 지금까지 제 글을 꾸준히 읽은 분들은 아시죠? 120°는 동짓날 일출지점이고, 그 반대인 300°..

공음 신대고인돌과 천체

공음 신대 구정마을 뒤에 있는 한 기의 고인돌. 요건 뭘 바라보는지 난감 그 자체이다.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각지거나 뾰족한 곳들을 중심으로 방위각을 측정해 보는 수밖에. 어쩔 수 없이 고인돌 이곳저곳을 유심히 보는데 그래도 역시 얼굴이나 앞면은 보인다. 추정컨데 뒤는 삼각형의 등이 보이고, 앞면은 비상하는 듯한 모습을 띄는 면이다. 그러한 면에서 방위각을 측정해 보니 진북방향, 그리고 220°와 120° 등이 측정되었다. 대체로 고인돌은 진북방향을 배후로 진남을 향하고, 220°는 여름철 별자리 관측과 밀접한 관련 있으며, 120°는 아시다시피 동짓날 일출지점이다. 요 고인돌 99% 제단으로 추정이 된다. 참 생길 것이 고민 많이 하게 하고 복잡하다. 고인돌시대 선사인들은 역시 센스쟁이다. 요즘 많..

고인돌시대 시간을 기록하다. 송암고인돌군

결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고인돌을 만들던 사람들의 센스가 느껴지는 순간. 죽림리 송암마을 배후의 고인돌은 3000년 전 고창 땅에 살던 선사인들의 센스를 보게 된다. 각각의 고인돌과 고인돌을 부채꼴로 배치하고, 그 부채꼴의 방위각으로 절기를 표현했다. 60°, 90°, 120°로 각각의 고인돌을 세워 표기했다. 그리고 남북축으로도 고인돌들을 배치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160°방향으로 고인돌을 세우고, 그곳에서 일직선으로 약 80여m 떨어진 곳의 에도 직선으로 연결되는 고인돌을 놓았다. 여기까진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 고인돌 간의 관계, 그러나 부채꼴 모양의 각 방위각의 거리가 뜻하는 것은 하지, 춘추분, 동지를 향하는 방위다. 그런데 중심의 춘추분의 낮시간인 12시간을 그림의 고인돌 간격의 길이를 1..

고인돌 연구의 접근방법은 다양하게

어제 조사한 무장 교흥리의 고인돌군과 고인돌 세곳을 카카오맵에서 거리를 계산하고 싶어서 고인돌군들을 서로 연결 해봤다. 헉! 뭐야? 이 고인돌군들이 서로 연결되잖아. 그것도 160°~340°로 한 줄로 배열했다는 말이네. 이것도 무지몽매한 선사인들이 실수로 이랬을까? 하긴 고수 부곡리는 북두칠성으로 배치했는데,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어. 조금 자세히 쓰긴 할것이지만 산 중턱의 고인돌군은 하늘과 별이 가장 가까운 죽음의 공간인 묘지이고, 밭 한가운데 구릉지의 고인돌군은 기우제나 천제를 올리던 주민들의 신성한 제의 공간이었다면, 가장 아래 첨금정이라 불리는 곳은 풍년을 기원한 농사력이자 제단으로 분리한 것은 아닐까? 선사인들은 고인돌을 통해 본인들만의 세계를 구획해 삶과 죽음과 농업의 풍년을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