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생각이 담긴 것이 고인돌이고, 고인돌의 배치는 그들의 표현이다. 무장 교흥리에 두 개의 고인돌군이 400~500m쯤 떨어져 있고, 한 곳은 산 중턱에 다른 한 곳은 위의 고인돌의 산줄기가 내려온 구릉에 있다. 어떤 이는 고명하신 학자의 이야기만 듣고 무덤라고 다른 어떤 의심도 없이 믿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장 교흥리의 두 고인돌군이 보여주는 것은 선사인들이 삶과 죽음의 공간을 분리하여 고인돌 각각의 기능과 활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이지만 산 중턱의 20여기의 고인돌은 분명 무덤이 맞고, 그 아래 밭의 4기 고인돌은 제단이다. 밭의 정상에 있는 고인돌들은 제단의 패턴이 보이는 방향성으로 절기나 별자리 관찰의 배치다. 앞으로 자세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