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의 고창(ドルメン高敞) 207

고창 성송 판정마을 고인돌과 천체

성송 판정마을 배후 구릉에는 세 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곳도 몇 번 왔는데 해석이 잘 안되는 것이 있었다. 눈이 수북하게 내린 오후 빙판길을 따라 달렸다. 세 기 중 하나는 고인돌이 춘분과 추분의 일출지점이다. 가운데의 멋진 녀석은 165° 정도로 멀리 장성으로 넘어가는 암치고개를 바라보는 것같다. 이 방위각은 초저녁 계절별로 지상으로 막 떠오르는 별자리른 관측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가장 얇고 기존의 방향 패턴에 안보이는 녀석이다. 고인돌 장축의 방향이 205°정도로 패턴인 215~220°와 10~15°차이가 나니 어찌 해석할지 고민이다. 215° 전후 방향은 자신이 위치한 곳의 자오선을 따라 밤 12시 전후로 남서향의 별들을 관찰되는 곳이고, 특히 하지 이후 뚜렷한 별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고인돌..

고창 판정리고인돌의 북두칠성 배치

가끔은 의도되지 않은 결과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고창 판정리 송암마을 앞 고인돌군을 조사하러 대나무 숲을 조사하니 고인돌이 있었죠. 사무실에 와서 고인돌들의 위치를 항공사진에 그려놓고 보면 어떤 새로운 결과를 낳습니다. 이번에도 배치된 고인돌들을 보니 그렇습니다. 각각의 고인돌들은 자기들만의 방향성이나 크기를 자랑하면서 전체적으론 북두칠성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을 조사하다보면 혹시 우연은 아냐? 라는 선입견과 의심을 하지만 그건 내가 선사인을 너무 모르고 있어서 하는 이야기겠죠. 우리는 남미에 있는 마야인들이 일식, 월식 등과 같은 천문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을 잊은 듯 우리 고창의 선사인들을 원시인으로 봅니다. 영국 스톤헨지나 이집트 피라미드는 천문과학이고, 우리의 고인돌은 의미부여가 없는 단순 ..

고창 죽림 송암마을 고인돌과 별자리

고창의 길가나 밭, 논, 묘지, 산 등 어디건 널려 있는 고인돌은 주민들에겐 골칫거리가 될 때가 많고, 은근슬쩍 포크레인으로 땅에 묻고 나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범죄행위다. 고창읍 송암마을 구릉에 한 기만 놓에 있는 고인돌 위로 농사용 철근, 호스, 비닐, 농약 등이 잔득 쌓여 있다. 30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초저녁 별을 보고 길흉화복의 점을 봤을 중심무대였을 건데 현대인들이 이를 모르니 쓰레기만 잔득 쌓였다. 이 고인돌은 직사각형으로 방향이 남동향인 170° 정도로 초저녁 매 시기별 별자리를 관찰하는 곳. 이 방위각 앞뒤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구릉이라 역시 별자리 관측에 좋은 여건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고인돌의 기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가 ..

고창 심원 도천리 고인돌과 북극성

수천년 전 선사인들의 생각과 삶을 담아낸 대표적 유적이 고인돌이고, 고인돌을 이해하기 위해선 내 자신이 선사인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먼저 유물을 현대의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고 학자들 편의에 의한 단순한 형식 분류나 편년, 권력구조에 집중된 글들을 쏟아낸다. 얼마 전 올렸던 심원 도천리고인돌로 일직선으로 향한 고인돌이 진북이라는 사실만 밝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긴 고인돌의 측면에 새끼치고 있는 다른 고인돌에 대한 해석이 안되었다. 비스듬히 큰 고인돌에 선사인들은 왜 붙였을까? 분명한 뭔가의 의미를 부여했을터인데 왜? 방위각을 측정하니 343°의 북서향이고, 직선의 반대쪽은 163°로 남동향이다. 현장에서는 축사로 가로막혀 163°가 향하는 곳에 뭐가 있는..

정읍 흑암 고인돌과 동지, 별자리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미확인돌 바윗돌입니다. 민가의 마당에 명확하게 알려진 고인돌이 있었고, 미확인 고인돌은 길이만 약 8.5미터에 이릅니다. 확인된 고인돌은 마름모꼴의 장축은 120°로 측정이 되었고, 중심은 160°로 확인되었네요. 즉 마름모꼴의 장축은 동짓날 일출을 향하고 있고, 중심은 초저녁 별자리를 관찰하는 방위네요. 문제는 미확인된 것으로 모대학 교수가 확인 후 고인돌이 아니라고 했다고 집주인이 말하십니다. 물론 그 교수의 말처럼 고인돌은 아닐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사시대 유물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지요. 이 거대한 돌은 아마도 인근의 두승산에서 가져온 것으로 마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암석입니다. 보통 하천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침식을 받아 깍인 돌이라면 주변에도 널리 분포하는 것이 당연. 근..

성내 용교리 고인돌과 동지, 춘분 추분

성내면 용교리 용교교회 뒤의 밭에 있는 고인돌. 두 기가 있는데 한 기는 직사각형에 얇고 평평하며, 다른 하나는 이 동네 선조들이 고인돌에 별의별 한자로 새겨 놓았는데 보는 내 마음이 아파. 뭐 내가 한자를 보러 온 것은 아니고, 이 고인돌의 패턴을 검증하기 위한 즐거운 조사랄까? 이곳도 축적된 데이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군. 벌써 일백여 기를 넘게 조사하니 반복되어 나오는 나침반의 방위각들이 몇 개있어. 한두개 측정할 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모르지. 나두 요 패턴 찾는데 십년 걸렸어. 왜 몰랐으니까? 설마 고인돌이 24절기와 관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어떻게 알아! 모르는게 당연하지. 겨우 역사적으로 동맹이네 소도네 뭐내? 무식한 것이 죄지 진작 알았으면 쉬웟겠지. 근데 고인돌이 이렇게 ..

성내 윤도장 고인돌과 성혈, 하지

그 유명한 성내 윤도장과 관련된 고인돌입니다. 이 고인돌은 생김새가 요상해 방위각 측정을 어찌 해야할지 난감합니다. 뭔 짐승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가운데 삼각형의 끝지점을 따라 방위각을 측정하면 정동이 나오고, 끝에서 휘어진 끝으로 측정하면 60°가 됩니다. 정동은 춘추분의 일출이고, 60°는 하지의 일출. 그런데 고인돌에는 수많은 성혈들이 있네요. 어떤 의미로 선사인들이 흔적을 남겼는지가 추정이 안되고 뭣보다 성혈이 너무 많아 머리가 매우 복잡해지네요. 근데 천원짜리 원형장식으로 놓으니 사진빨이 참좋고 선명하니 좋네요. 202202132128

고창 성내 산림리 고인돌의 방향성과 성혈

성내면 산림리를 지나다 길가에 잡풀로 뒤덮인 고인돌이 있어 정리를 하고보니 성혈이 여러개 눈에 띄어 열심히 청소합니다. 긴 삼각형이라 성혈에 뭔가를 놓을 수 없어 생수 뚜껑에 물을 담아 손가락으로 표시를 했죠.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으니 풍화가 심해 제대로 구분이 안가는 흔적들이 쾌나 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로 확인하고, 그래도 몰라 노트에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나침반을 꺼내 고인돌의 장축의 방위각을 측정하니 160°입니다. 참나 전남북의 서남부지역의 선사인들의 생각이 모두 비슷한건지, 요 방위각도 패턴입니다. 일몰 후 초저녁에 동남쪽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매일 관찰하였겠네요. 주변이 이렇게 잘보이는 구릉이니 좋은 위치네요. 방장산에서 떠오르는 별들을 한 지점에서..

고창 신대리 고인돌의 바향과 성혈이 의미하는 것

성내면 신대마을 앞 당산 옆에 있는 고인돌이죠. 예전에 많이 보았고 무엇을 위해 이곳에 선사인들이 설치했는지 솔직히 몰라 포기했습니다. 그런다고 지금도 다 아냐? 그건 절대 아니죠. 고인돌의 뾰족한 부분이 앞이고, 평평한 곳이 엉덩이로 보이는데 저 만 그런가요? 고인돌의 앞에는 여러 개의 바위구멍이 있네요. 아직은 연구를 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고인돌의 장축이 220°를 향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패턴 중 하나입니다. 특히 220°으로 향한 고인돌 중 남두육성의 별자리가 새겨진 것을 고창에서만 두 개 발견. 이 방위각은 자정 전 별자리가 가장 관찰하기가 좋은 각이고,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빛나죠. 신대고인돌의 덮개돌에 성혈이 있다는 것은 이 고인돌도 자정 전 별자리를 관측하기 ..

고창 선사인들은 지표면의 어느 천체을 향했나?

저 멀리 고갯마루에 해가 걸렸네요, 며칠 후면 지금 해의 오른쪽으로 더 이동을 하고, 저 산봉우리로 해가 지면 농사준비합니다. 초저녁 밥을 먹고 어두컴컴해지면 동남쪽 밤하늘에서 별들이 얼굴을 내밉니다. 오늘 저 별들이 맑고 깨끗한 것을 보니 올해는 농사가 풍년이 들려고 하나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달이 침범하여 별들이 빛을 잃고 마니 올해의 농사가 걱정이 됩니다. 고인돌은 계절이나 절기를 알려주는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농사를 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지요. 올해 홍수가 들지 흉년이 될지 의존할 것은 하늘 밖에 없었고, 그 중심에 해가 있습니다. 고인돌은 기록되지 않은 텍스트였고, 시간 표시를 지워지지 않게 보존하는 확실한 방법이었죠. 선사인들에 있어 새해와 농경의 중요한 포..